“나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정주리 감독은 <다음 소희>를 통해 ‘소희’의 죽음과 그 이후에 느낄 ‘유진’의 무력감을 현실적으로 그린다. “‘소희’의 죽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다루었고, 그보다 더 큰 암담함으로 ‘유진’이 느꼈을 무력감을 다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음에 올 아이들을 걱정하는 ‘유진’이라는 존재 자체가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존재가 ‘소희’를 잃은 우리가 여기에 주저앉지 않고 이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희망이 되길 바랐다” 이로써 <다음 소희>의 ‘다음’은 우리 곁의 수많은 ‘소희’를 위한 희망이 된다. 우리는 그 희망을, 절대 놓쳐선 안 될 것이다.
정주리 감독이 영화 <다음 소희>를 만든 이유
열여덟 살 고3 홍수연 학생은 전북 완주의 특성화고 애완동물학과에서 기술을 배웠습니다.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콜센터에 현장실습에 가라는 학교 선생님의 지시로 회사에 갔습니다. 사원증과 명함이 나오는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부모님도 좋아했습니다. 현장실습생이 됐습니다.
그런데 소녀는 회사에서 배치해준 ‘해지방어’ 업무가 맞지 않았습니다. 해지방어는 그야말로 고객 욕받이 부서였습니다.
발랄하던 소녀는 넉 달밖에 일하지 못하고 스스로 차가운 전주 아중저수지에 잠겨 사망했습니다.
2017년 1월 23일에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원래 이 사건은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어느 사업장인지, 어떤 경위인지, 유족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콜센터 회사, 소녀가 재학했던 학교, 교육청, 노동청 모두 사건이 조용하게 넘어갔으면 하고 바랐을 것입니다.
전북의 어느 청소년 인권활동가가 “학생 한 명이 투신했다”는 단신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학교마다 전화를 다 돌려봤습니다. “사망한 학생이 어느 업체에서 일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대부분은 “무슨 소리죠?”,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학교는 “지금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의 기지로 마침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7년 후인 2023년 2월,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했습니다. 소희(김시은 분)가 처음에 일을 시작하고 어떤 일을 했고, 그리고 마지막에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쭉 묘사했고, 이 죽음 이후에 이 사건을 이제야 수사하게 되는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2부로 나뉘는 특이한 구조의 영화입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3월 30일에 ‘다음 소희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에 대한 ‘강제 근로·폭행·착취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입니다.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을 만나 영화와 노동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왜 고등학생이 이런 데서 일을 하지?
-<다음 소희>를 보고 의미 있는 노동 관련 영화라 인터뷰 연락을 드려봤는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작사로부터 연락 전달을 받았는데 법에 관한 너무 전문적인 인터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런데 대화 마지막에 학생들한테 노동법을 알리는 일을 하신다는 내용을 들어서 동의했어요. 적어도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다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던 터였습니다.”
-노동법 교육을 한다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면 이제 기억도 못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런 영화나 콘텐츠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감독님이 특히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했던 게, ‘왜 고등학생이 이런 데서 일을 하지’였어요. 그게 납득이 안 됐어요.
학교가 아이들을 그런 현장으로 보낸다는 것, ‘해지방어’라는 그 일이 굉장히 안 좋은 업무였지요. 콜센터에서 상담은 할 수 있죠. 그런데 해지하려고 하는 고객의 해지를 못 하게 막는 그 팀이 따로 있고, 거기에 필요한 온갖 스킬을 가르치고 있다는 거잖아요. 해지를 못 하게 막으면 고객은 화가 날 대로 나고, 우리 다 한 번씩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그게 그렇게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매우 안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당 회사와 학교가 문제였을까요.
“이런 일을 하도록 아이를 보낸 그 학교만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전체적으로 다 이런 상황이라는 것이고, 학교가 그렇게 하도록 또 교육청은 그대로 놔두고 있다는 것이고. 전체 공적인 시스템 안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게 충격적이었거든요. 이 얘기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일이 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심지어는 이대로 가다가는 닥치는 대로 돈만 된다 하면 그곳이 어디든 다 보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들었어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알려줘도 소용없다
-학교는 취업률만 높이면 되는 거죠. 회사도 할 일을 하는 거고요.
“소희는 ‘내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 줄 알아요?’라고 담임 선생님에게 질문하죠. 유진도 ‘그 일이 뭔지 아세요’라고 물어보고요. 그런데 정작 거기에 학생을 보낸 선생님은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사실, 여기서부터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소희가 노동청에 달려가면 뭔가 답이 나올 수 있다, 밀린 돈을 받을 수 있다, 혹은 뭔가 다른 조치나 절차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교육을 받았다면 그러면 결과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당연하죠. 그런데 전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보낸 학교가 노동법 교육을 하겠어요. 그런데 만약에 반드시 그런 교육을 받는다, 그게 완전히 제도적으로,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하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장실습생이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라는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까 보호를 못 받는 그런 문제도 있죠.
“그게 저는 이해가 안 가요. 학생이면서 노동자인 건데 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돼 있는지 그게 제일 문제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묻고 싶어요.”
-정부에서, 고용노동부에서는 현장실습생은 그냥 학생이니까 노동자가 아니고, 따라서 퇴직금을 못 받는다, 이게 공적인 해석이거든요. 여기 보면, ‘산업교육진흥법에 의거하여 교육과정의 일부로서 공고생이 향후 산업에 종사하는 데 필요한 지식·기술·태도 습득을 목적으로 표준협약서에 따라 현장실습이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근기 68207-1833, 2002.5.4.)’고 돼 있죠.
“너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그 입장도 이해는 돼요. 왜냐하면 숙련된 노동자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실습생이라고 하면서 말씀하신 대로 임금을 다 안 주는 건데, 그렇더라도 아직 숙련되지 못한 상황에 관한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선까지는 지급을 해줘야죠.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인데, 현실에선 일어나는 일은 도무지 납득이 잘 안 돼요. 아예 노동자로 인정을 안 하니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좀 합리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수습 노동자는 최저임금의 90%까지 임금을 깎을 수 있어요. 깎을 수 있는데 한계가 있죠. 현장실습을 나가기 전과 후의 계약서가 달랐어요. 학생과 학교, 회사 3자 간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는 하루 7시간 근무, 월급 160만5000원이라고 기재돼 있었는데, 실습 나간 후 회사와 수연양이 새로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월급 113만5000원, 연장근로와 야근, 휴일 근무에 동의한다고 돼 있었다고 해요.
“취약함을 도구로 삼아서 그렇게 했다, 회사 사정에 따라서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는 근거로 법 규정을 나쁘게 활용했다는 거잖아요. 누가 이렇게 현장실습생들의 처지를 취약하게 만들었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어
-‘학생이 일하다가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 하는 사람이 없어’가 유진의 대사죠. 당시 회사 팀장의 2017년 3월 MBC 인터뷰를 보면, ‘(자해) 상처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하고요. 학교 다니면서도 여러 번 폭행이 있었다고 하고, 우리가 보면 약간 정서적으로도 의심이 되고’라고 했어요. 오히려 소희 탓이라는 거죠.
“영화 속에 이미 내 탓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합니다. 담임 선생님이나 장학사나 당연히 콜센터에서는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하고. 하지만 소희의 친구들은 자기 탓을 하고, 또 소희의 부모님도 처절하게 후회하시죠, 당연히. 그리고 전 팀장님 같은 경우는 사실은 그 사람 다음에 소희가 온 셈이죠. ‘이전 소희’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분은 책임을 통감하니 고발장 같은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신 거고요. 그런 사람도 있고, 내가 뭘 잘못했냐, 이제 와서 내가 뭐 어쩌겠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죠. 그렇게 그리긴 했어요.”
-유진이 마지막에 소희가 추는 춤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데요. 그게 결론이 된 이유는 뭔가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 어떻게 보면 그 마지막 장면을 위해 전체 이야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제가 영화를 통해 다루는 것은 ‘감정’이거든요. 그리고 그 감정은 한 시간을 그렇게 지켜봤던 그 아이가 느꼈을 어떤 감정, 그 아이를 바라볼 때 관객분들이 느끼는 그 감정 그리고 주인공을 잃고 나서 새롭게 등장한 주인공과 함께 이 사건을 다른 면으로 또 바라보게 됐을 때 느껴지는 그런 감정들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관객분들에게 이 아이가 살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죽고 없다는 것, 이게 좀 남다르게 남기를 바랐어요. 그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각, 그리고 지금 없다는 것에 대한 상실의 감각, 이게 두고두고 좀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이해를 해가는 유진과 이런 인물들이 계속해서 관객들 마음속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거든요. 그러려면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굉장히 중요했어요. 한편으로는 사실 유진과 소희는 만난 적이 없잖아요. 유진은 어떻게 보면 그 여정을 하면서 소희가 느꼈을 그런 절망과 암담함을 자신도 비슷하게 느끼고 힘들어한단 말이에요. 고통을 받는 거죠. 소희의 춤 영상은 그렇게 남은 유진에게 마치 소희가 주는 선물, 어떤 위로 같다는 생각도 저는 했어요.”
-영화 덕분에 이제 현장실습생도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직장 내 괴롭힘)을 적용받는다고 합니다. 다만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고 그냥 한 줄만 쓰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근로기준법의 몇조 몇조 몇조 선별적으로, 아쉽죠 아직은.
“학생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좀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이 일을 해야만 하거나 혹은 학생이 일을 하고 싶거나 하는 상황에서 일을 하기로 한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노동자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이런 상황은 너무 아니잖아요. 그런 논의를 좀 다 같이 해보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인터뷰 수락한 이유로 말씀하셨던 ‘노동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는 그 부분이요. 제가 얼마 전에 프랑스 개봉 때문에 갔는데 그때 느꼈던 게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노동자가 된다는 걸 되게 자연스러워했고, ‘나의 정체성’으로 간직하고 있었어요.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을 알고 인식하고 또 배우고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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