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처장(김윤석)의 주도 하에 경찰은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거짓 발표를 이어가는 경찰. 그러나 현장에 남은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키고, 사건을 취재하던 윤기자(이희준)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한다. 이에 박처장은 조반장(박희순)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
한편, 교도소에 수감된 조반장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이 사실을 수배 중인 재야인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조카인 연희(김태리)에게 위험한 부탁을 하게 되는데…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
남영동 대공분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의 경우 피고문자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공산주의 사상범으로 조작하기 위해 허구의 조서에 담긴 내용을 모두 시인하게 하기 위해 고문실의 내부 또한 특이하게 개조되었다.
바닥과 벽면을 모두 붉은 계열의 페인트로 칠하고 수용자의 자살 방지와 고문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나무보드 흡음재가 벽면에 부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0년 리모델링에 따라 박종철이 고문당한 509호를 빼고 이러한 잔혹한 고문의 흔적을 은폐하기 위하여 바닥과 벽면을 연두색 페인트로 칠하고 본래 욕조가 있던 자리에 세면대와 변기를 놓고 바닥에 나사로 고정되는 의자까지 떼어버렸다.
실제로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실마다 있는 라디에이터를 기울이거나 흡음재의 구멍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래의 빨간 벽면 페인트 자국을 볼 수 있다.
또한 주 고문실로 사용된 5층에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도 모르는 기이한 구조의 방이 여럿 있다.
2019년부터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대공분실을 민주운동기념관으로 변모시키고 폐기되거나 용도변경되어 그 잔혹한 흔적이 감춰진 대공분실의 원형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보기관, 군 수사기관, 대공분실 외에 특수수사대 분실과 일반 경찰서 및 파출소에서도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군 수사기관의 경우 대통령 암살사건의 주동자급 가해자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
일반 경찰서와 파출소의 예를 들면 연행된 사람이 여자라면 성고문까지 했었고, 민주화 운동가가 빨갱이로 몰리는 것 말고도 연쇄살인사건이 터졌으면 증거가 없는 엉뚱한 용의자가 살인범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간첩조작 사건이 터질 시 일가 친척까지 불고지죄로 줄줄이 끌려와 고문을 당했다.
심지어 1983년에 섬유업과 관련된 대기업 이사가 특수수사대 요원들에게 고문을 당하다 죽기도 했으며 박종철을 고문하다 죽인 수사관도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특수수사대 요원에게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6월 항쟁 민주화 운동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한다.
부검을 맡았던 의사의 증언으로 죽음의 진상이 밝혀졌다.
독재의 실상을 알게 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개헌을 요구했다.
전두환은 호헌(護憲)으로 맞섰다.
6월 9일, 호헌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다.
6월 10일,
차기 대통령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린 날,
서울과 부산, 광주에서 대학생들이 대대적인 거리 시위를 이어갔다.
날이 갈수록 시민들의 시위 합류는 눈에 띄게 늘었다.
택시와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같은 시각에 경적을 울렸다.
6월 20일, 전국적인 국민평화대행진이 일어났다.
6월 29일, 전두환 정권은 6.29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발표했다.
7월 9일, 이한열 군의 영결식이 열렸다.
민중들은 무력으로 국민을 다스리려 했던 독재정권을 굴복시켰다.
영화1987김정남 - 누구인가
영화 1987 실존인물 '김정남'은 누구일까요? 그는 '인혁당 사건' 진상을 폭로했고, '김지하'의 양심선언과 함께 했으며,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폭로한 장본인입니다.
영화 1987 실존인물 김정남은 억울한 구속자들과 당국에게 쫓기던 수배자들을 돕다가 결국 구속당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글을 잘 썼고 정국 기획능력이 뛰어나서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의 글이 인정받는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동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 의원일 때 정부의 탄압을 받자 그의 연설을 도와준 것도 김정남이라고 합니다. 출소 후 그는 해외 지원자들의 민주화운동 지원을 연결해 주는 역할까지 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영화 1987의 김정남이 김영삼에게 간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갈 경우 더욱 탄압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라고 합니다. 당시 정권은 김대중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민주화운동이 가능한 선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으로부터 그의 투사적인 면모는 사라져 갑니다.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통해서 군부 세력과 결탁하여 보수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지하, 김문수, 이재오 등도 그렇게 보수화가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D43bp2iPiQ
https://www.youtube.com/watch?v=KxgNQ8cjtfk
덮으려는세력 그리고 밝히려는자들.. 진실은 감옥에 가둘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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